2017년 회고
2018년의 중간을 달리는 시점에서(…) 처음으로 개인회고를 해본다. 일찌기 해볼껄 하다가 차일피일 미루어져 오늘까지 온 것 같다. 그래도 오늘처럼 적기 시작하는게 어디냐며. 지난 한 해는 굉장히 다이나믹했던 것 같다.
퇴사
6월 께, 전 직장를 뒤로 하고 1주일의 휴식을 가진 뒤, 지금의 회사에 몸담게 되었다. 이번 퇴직은 지난 퇴직에 비해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회사 입장에서도 한참 일 해야 할 인력이 나가는 상황이니, 있는 힘껏 붙잡는 것도 이해는 갔지만, 요청을 거절하는게 어렵다는걸 다시 한번 깨닳았다.
회사에 처음 매력을 느꼈던 것은 아름다운 문화
를 추구한다는 회사의 분위기였다. 이 전의 회사가 굉장히 경직된 조직이었기 때문에, 전 회사는 파라다이스같이 느껴졌다. 2년차에는 그 문화를 맘껏 누리면서, 정신없이 일을 했었다. 신나서 개발만 했기에, 다른 부분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고, 업무실수 등으로 드러나면서 내 과오(?)가 여실히 드러났다. 아마 이 때 쯤부터 내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여튼, 시간이 지나 2017년에 이르렀고, 계속 쌓여가는(?) 기술부채들을 해결해보고자 심혈을 기울여 보았지만, 내 개발 경력보다 수명이 긴 프로젝트는 너무나 거대했다. 레거시
의 크고 아름다움을 느끼며, “아 나 혼자 개선할 수는 없는 일이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작은 노력이 이 레거시의 일부라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프로젝트나 회사문화 모두 변화
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격동은 부담스러우니까 약간이라도 그 여지가 있어야 한다 생각했고, 내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었던 것 같다. 회사의 문화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긴 했지만, 너무나 바쁜 탓에 변화를 수용하기는 어려운 시기였다. 프로젝트 또한 그랬다. 가득 차버린 하드디스크처럼, 조금의 여유도 없어보였다. 이것이 나에겐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 같다.
퇴직을 마음먹고도, 스스로의 결정에 아쉬운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새로 진행할 프로젝트의 핵심 인력이 될 수 있었고, 내가 알고 있는 것에 한해서 부사수님한테 알려주고 싶은 것도 많았다. 같이 일해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사
이사를 하면서 전세가 아닌 매매를 해버렸다.(…)
아직도 이게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전세금을 돌려받으며 겪은 수모를 생각하면 내 자신에게 잘했다며 궁디팡팡해주고싶다. :)
좁은 집이지만… 내 건프라들이 서있을 공간도 없지만… 이 하늘 아래 맘놓고 몸을 뉠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머지않아 프라들이 설 수 있는 곳으로 이사가고 말리라)
새로운 회사 & 원격근무
공교롭게도, 새 직장의 직장동료들은 이전 직장의 동료들이었다(…). 전 직장의 어느 분은 구로 땅에 발을 들이시다니...
(전 직장이 구로에 있음)라며 농을 던지셨지만, 지금도 종종 전 직장에 가곤 한다.
새 직장은 기틀이 어느정도 잡혀가는 스타트업이었으며, 소프트웨어가 주력이 아닌 회사이다. 이전 직장을 골랐던 기준에, 몇가지 조건들을 더 추가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는 만족스러웠다.
그 조건 중 하나가 원격근무
였다. 사무실이 아닌 공간에서, 갑자기 일을 하고 싶은 새벽이나 밤에 자유롭게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입사한지 몇 일 되지도 않으신 분이, 통근시간이 왕복 3시간이라는 점을 빌미로 원격근무를 종종 했고, 효과는 굉장했다! 기분도 좋았고, 목표했던 일들도 대체로 이루어져서 더욱 좋았다.
업무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고민이었다. 이전에는 Console Native Application을 주로 했었다고 하면, 이번에는 흔히 말하는 Full-stack 개발을 하게 된 것이다. 콘솔 프로그램과 웹서버는 문제발생의 영역이 굉장히 다르기 때문에, 걱정부터 앞섰다. 게다가 웹영역은 내가 모르는 영역이 많기 때문에, 어두컴컴한 심해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것은 나 혼자 개발할 때의 이야기이고, 든든한 우리 개발팀을 생각하면 걱정은 이내 사라졌다^0^ 이때까지만 해도, Node.js가 Backend용 언어가 될 줄 알았겠지만, 라프텔에서 Python과 Django의 뽕을 맞은 나는, 새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Django와 React로 결정하여 우리 개발팀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프로젝트와 일정 산출
Django와 React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최장 2개월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Chris(사내 이름)가 이걸 혼자 만들면, 회사를 차려도 될 것 같아요” , by an AI Engineer
…?
다른 분들이 먼저 작성해놓은 Wireframe을 봤는데, 크게 복잡하지 않을 것 같았고, 2개월이면 충분해보였다. 물론, 이건 내가 처음으로 주도한 프로젝트였다는 점이 문제였을 뿐.
한참 테스트코드
에 꽂혀있었기 때문에, TDD를 시작했다. Obey the Testing Goat
라는 무시무시한 표어를 가진 분의 책과 함께 과감히 프로젝트의 뚜껑을 열었고, 5개월이라는 시간과 함께 1차 뚜껑을 닫았다(…) 참혹했다. 개발팀과 프로젝트를 회고하며, 일정산출에 관대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되새겼다. 주된 원인은, 테스트코드에 대한 숙련도 부족이었다. 일부 케이스에 대해 테스트가 원하는대로 수행되지 않아서, 방법을 찾느라 시간을 많이 썼다. 지금은 프로젝트 초기보다 많이 익숙해져서, 처음부터 다시 한다 해도 3개월은 걸릴 것 같다. ㅎㅎ
한 해의 감상
많은 일이 있었던 한 해였다. 하지만 많은 일이 있었던 것에 비해, 내가 업무적으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 부족한 만큼 많은 부분을 학습할 수 있었고, 이것이 작년에 비해 성장한 것이라 생각하면 어느정도는 만족스럽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뿌듯한 한해가 되도록 열심히 내 몸과 머리를 굴려야겠다.